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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을 읽다. '금강웹진'

COVER STORY

금강대학교의 커버스토리 입니다.

금강웹진 잠시 쉬어갑니다.

Hit : 1989  2022.01.01

매월, 금강대학교와 금강대 학우들의 크고 작은 소식을 전달해왔던 금강웹진이 1월호를 통해 휴간 후 재구성을 합니다. 웹진 활동을 이어왔던 국원들도 활동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금강웹진 잠시 쉬어갑니다.


 

 

매월, 금강대학교와 금강대 학우들의 크고 작은 소식을 전달해왔던 금강웹진이 1월호를 통해 휴간 후 재구성을 합니다. 웹진 활동을 이어왔던 국원들도 활동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금강웹진은 개교 초기부터 지금까지 금강대의 역사를 기록해왔습니다. 역사는 때때로 잔인해서,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아닐 수 있습니다. 저희에게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더 깊게 알 수 있었고, 사실을 더 정확히 알 수 있었으며,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기록은 우리를 영원하게 합니다. ‘모든 것이었던 웹진에 대한 마음을 담아, 국원들 한명 한명의 인사를 전합니다.

 

웹진에게

이주연 (행정학전공, 18)

3년 전, “웹진에 들어가 저도 다른 학우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사를 작성하고 싶습니다!” 라는 각오와 함께 웹진에 들어왔었는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 웹진 활동을 마무리하는 순간이 다가왔네요. 그동안의 시간들을 생각해 봤을 때 나름 모든 활동에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 후회보다는 뿌듯한 맘이 좀 더 크게 느껴집니다 ㅎㅎ 웹진 활동을 하면서 제 자신이 꽤 많이 성장한 것 같습니다. 책임감은 물론 사교성, 리더십까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여러모로 저를 발전시켜준 웹진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한 부분인 것 같아요. 지금은 국원들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이렇게 웹진이 마무리되지만, 웹진은 금방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웹진은 그만큼 매력적이기에! 마지막으로, 그동안 부족했던 국장을 따라준 우리 국원들, 웹진에 관심 가져주셨던 구독자 학우분들에게 감사의 말씀드리고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제 그동안 짊어졌던 책임감은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만나요. 그럼 이제 웹진 안녕 ~

 

금강웹진을 마무리 하며

현진석 (사회복지학전공, 18)

안녕하세요 금강웹진의 부국장 현진석입니다. 아쉽지만 금강웹진의 활동을 잠깐 쉬어가야 할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년도 3월 처음 웹진에 들어와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것들을 배우고 발전하던 중 좋은 기회가 생기게 되어 부국장이라는 자리까지 맡아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국원들을 이끌어 가야 하는 위치에 있고, 책임지고 마무리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 근심과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든든한 국장님과 국원들 덕분에 제가 걱정하고 있었던 시간들이 무색할 정도로 잘 이겨내고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금강웹진의 활동을 하면서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값진 경험과 실력을 쌓을 수 있었던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사진기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학교 행사장의 분위기를 담아 사진을 찍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연락하며 인터뷰를 받고, 기사를 작성하여 업로드를 하는 것까지 어디에서도 해볼 수 없는 경험이었으며 엄청난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웹진이라는 말을 듣고 접하게 될 때에는 글을 쓰고 기사를 작성해야 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할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듯이 생각하는 것만큼 어렵고 힘들지 않았습니다. 금강웹진이 다시 살아나는 날, 금강웹진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이 이 좋은 경험을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금강웹진을 잘 이끌어주신 국장님, 옆에서 조언과 도움을 더하고 잘 따라와 준 국원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지금까지 금강웹진의 기사를 읽어주시고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웹진에게

권지훈 (응용불교학전공, 18)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처음 알게 된 웹진, 1학년 여름방학에 나에게 웹진국원이 될 기회가 다가왔다. 처음엔 내가 과연 기사를 작성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금강대 학생들의 한 번뿐인 대학 생활을 기록에 남기는 것에 매력을 느껴 웹진국원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기사 주제를 정하고 직접 촬영한 사진들과 함께 기사를 써 내려가는 것이 어렵긴 했지만, 기사 마지막 금강웹진 권지훈이라고 표시된 걸 보면 한 달 동안의 노력이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가족들과 주변 친구들에게 기사를 공유하며 자랑하기도 했으며, 나의 기사를 본 학우들이 기사 내용을 칭찬할 때면 그 뿌듯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한 학기의 수습 기간, 1년간의 정국원을 거쳐 마침내 웹진 국장이 되었다. 비대면 시기와 겹쳐 다양한 활동을 하지 못한 아쉬움과 소수로 진행되어 매달 2~3개씩의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따라와 준 국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대면이 시작된 후 웹진에도 새로운 활기가 불었다. 나는 명예 국원이 되었으며, 새로운 국장, 부국장, 그리고 신입 국원과 함께 웹진 워크숍 및 마니또 이벤트, 웹진 소식지를 발간 등 그동안 못 해보았던 활동들을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담당 선생님의 도움으로 글쓰기 특강을 들으며 기자로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나의 대학 생활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해준 웹진에게,

마지막까지 함께 해준 영서오빠, 주연이, 진석이, 예찬이 그리고 찬겸이까지 그동안 너무 고마웠고,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의 웹진은 여기서 잠시 멈추지만, 끝이 아닌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길 기원하며... 그동안 웹진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웹진에게

박영서 (불교학전공, 19)

종종 의미를 묻곤 합니다.

나는 왜 대학을 다니고, 나는 왜 웹진 활동을 하고, 나는 왜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 의미를 묻는 까닭은, 제가 유난히 명석하거나 통찰력 있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러지 않고선 베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택이 가장 어려운 순간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없을 때인 듯합니다. 제게는 웹진이 그랬습니다. 웹진은 굳이, 이렇게까지?’라는 물음이 언제나 따라오는 곳입니다. , 하고자 한다면,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형성되면, 나아가 그것들이 허용되는 바운더리가 굳건하다면, 활동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질 수 있는 곳이죠.

모든 동아리 활동이 그렇습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쉬이 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의미와 이유는 본인이 찾아내야죠. 의미를 찾아내지 않았다면, 제가 웹진 활동을 3년간 이어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순전히 책만을 위해 글을 쓰는 마지막 세대라고 자처합니다.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코너는 주식 책과 에세이 류, 혹은 연예인이나 유튜버가 낸 책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제 위대한 철학자의 오래된 격언은 ‘Hello, world’만큼의 영향을 세상에 주지 못합니다. 세상이 원하는 글, 팔리는 글도 간단하고, 명료하며, 의미 파악이 쉬운 글로 다듬어지고 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저는 소위 먹물들이 멋있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를 옆구리에 끼고 사랑과 예술을 논하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마냥 그런 게 멋있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대학가에서도 먹물은 멸종위기가 되어버렸죠. 저 또한 그럴 깜냥이 아니라는 건 진작에 깨달아버렸지만요. 다만, ‘먹물 흉내는 내보고 싶었습니다. 웹진은 제게 그런 의미였습니다. 글을 쓰고, 세상에 내보이고, 비록 적은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읽히고, 그것으로써 다시 양분을 삼는, 그런 활동이었습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결함 많은 저를 따뜻이 맞이해준 모든 웹진 학우들 덕분입니다. 때론 고심했고, 때론 즐거웠으나, 그 모든 순간이 제게는 각각의 의미로 남았습니다.

언젠가 새로운 얼굴이 지면을 통해 인사를 건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담습니다. 그들이 꾸려갈 지면 또한 멋지리라는 희망도 담습니다. 그들 또한 충만하게 의미 있는 활동을 하리라는 희망도 담습니다. 모든 희망을 담아, 안녕을 고합니다.

 

금강웹진에게

김예찬 (불교학전공, 19)

금강웹진과 함께한 1년을 떠올리며 그동안의 소감을 간단히 얘기해보려 한다.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이라면 역시 기사 작성 경험일 것이다. 첫 기사를 작성할 때에만 해도 기사 작성이 어렵고 힘들게 느껴졌지만, 기사 작성이 반복되면서 재미가 붙었다. 특히, 기숙사에서 진행한 소방훈련과 학생회에서 주최한 취업특강 '선묻선답'의 취재 과정은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 같다.

10월에는 국원들과 논산 소재의 펜션으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평소보다 길게 기획회의를 하며, 기사에 대한 피드백과 그달의 기사 작성 계획을 세웠다. 또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보드 게임도 하며 국원들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였다. 워크숍을 다녀온 후 글쓰기 특강을 들었다. 약 한 달간 글쓰기 진행된 특강을 통해 글쓰기 실력이 매우 향상되었음을 느꼈다. 기사 작성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웹진 활동에 들어가고 국원들과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었다. 특히, 국원들과 친분을 쌓게 해준 1등 공신은 바로 마니또였다. 마니또를 통해 다양한 추억을 만들며 국원들과 정말 가까워 질 수 있었다. 그리고 2학기에 합류한 찬겸이와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러 추억들을 쌓았던 것 같다.

11월달에는 도서관 1층에 금강웹진 회의실을 배정받았는데, 이 공간에서 기사도 쓰고 시험기간에는 함께 공부도 하며 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이다. 나에게 있어서 웹진과 함께했던 1년은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 아쉬움만 남기는 짧은 시간인 것 같다. 무엇보다 함께 금강웹진 활동을 했던 국원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 것 같다. 앞으로 금강웹진을 이끌어줄 누군가에게 감사와 격려를 전하며 글을 마무리 하겠다.

 

나의 대학생활, 나의 웹진에게

김찬겸 (글로벌융합학부, 21)

지난 1학기. 코로나의 여파로 인해 우리 학교는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줌을 이용해 수업을 진행해 편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이대로 2학기까지 학교를 못 가보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학기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학기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우리 학교가 대면으로 전환한다는 소식이었다. 처음으로 학교를 갔을 때는 강의실도 찾아다니고 어디가 어디인지 몰라 낯설었지만 점차 시간이 흘러 익숙해져 학교생활에 차츰 적응 해나가는 나였다. 그러던 중 학교 건물 곳곳에 공고를 보았다. 웹진이라는 동아리가 신입 부원을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신입생의 신분으로 학교 동아리에 한 번쯤은 가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나에게는 흥미롭게 다가왔고,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다. 동아리에 가입해 학교의 일원으로써 기사를 써보는 활동, 행사 취재 활동 등 다양한 활동 해보았던, 지나 보니 나에게는 후회 없는 한 학기를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웹진이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잠시 정비의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여태껏 달려와 준 많은 이들의 노고에 대한 박수를 보내며, 오는 내년 학기 새로운 웹진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아울러 한 학기 동안 고생한 나와 많은 이들에게 진심으로 수고했다는 말을 전해보며 오는 새 학기 힘차게 시작하길 희망해 본다.

 

이제 웹진은 잠시 펜을 내려놓습니다. 당연하게도, 웹진은 구독자 여러분이 계시기에 비로소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의 주요 소식을 전하던 <커버>, <인사이드>, <꾸탐방>, 졸업생 인터뷰를 전하던 <피플>, 금강대인의 칼럼 코너 <소셜><문화산책>, 외국인 학우들의 금강대 생활을 다뤘던 <외국인의 금강생활>, 학우들의 여행기인 <청춘 유랑기>, 학우들 간에 편지를 나누던 <릴레이편지>까지.

 

그동안의 모든 이야기를 읽어주신 것,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다시금, 지면을 통해 인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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