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반복되는 일상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 백예린 리메이크 앨범, [선물] 리뷰
천사의 목소리로 위로를 전하는 아티스트, 백예린의 리메이크 앨범이 발매되었어요. 그동안 있었던 팬들의 무수히 많은 요청 끝에, 드디어 정식 음원으로 그녀의 리메이크 버전을 들을 수 있게 됐죠. 여러분과 함께 듣고 싶어서 준비했어요. 백예린의 리메이크 앨범, [선물]의 일부 수록곡을 리뷰할게요. “반복되는 일상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1. 그럴 때마다 [원곡 : 토이]
얼굴로 먹고사는 뮤지션, 토이의 2집 앨범 [YOUHEEYEOL]에 수록된 노래 <그럴 때마다>가 1번 트랙을 차지했어요. 이 노래의 원곡에는 많은 아티스트가 참여했는데요. 윤종신, 이장우, 조규찬, 김연우, 조삼희, 김창원, 유희열 등, 지금은 이미 관록 있는 뮤지션이나 연주자가 되신 분들이죠. 백예린 버전에서는, 원곡의 비트와 토이의 시그니쳐 전자음이 모두 빠지고, 담백한 피아노 멜로디 라인에 그녀의 목소리만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원곡에서는 모두가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는 느낌이라면, 그녀의 버전은 오랜만에 보아도 언제나처럼 나를 반겨주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편안한 느낌이네요. 힘을 뺀 그녀의 목소리는 세상 편안하고, 가볍게 흘러가는 피아노의 멜로디는 더없이 정겹네요. 편안한, 그러면서도 언제나 정겨운 벗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축복과도 같은 일이죠.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모르게 흘러가는 지친 일상을 포근히 안아주는 그녀의 첫 번째 선물이었습니다. 2. Antifreeze [원곡 : 검정치마]
‘뉴욕펑크의 자유분방함과 달콤한 모던록의 멜로디, 그리고 21세기 록 음악의 현재까지 고스란히 그리다.’라는, 칭찬 일색의 호평을 받았던 검정치마 1집 앨범 [201]의 수록곡 <Antifreeze>가 그녀의 목소리로 재탄생했어요. 검정치마의 1집은 홍대씬에서 메이저로 한순간 올라서게 한, 그야말로 슈퍼루키의 등장이었죠. 백예린 또한 어느 순간, 한국 음악을 대표할만한 아티스트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둘의 만남이 묘해요. 검정치마 1집은 유니크함과 솔직함, 파격적이면서도 섬세함이 돋보이는 앨범이에요. <Antifreeze> 또한, 느슨한 목소리와 대조되는 장난스러운 기타 리프로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소년의 마음을 대변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죠. 그녀의 버전에서 원곡의 장난기는 찾아보기 어려워졌어요. 가벼운 터치의 피아노 라인과 한 음 한 음 조심스레 내는 그녀의 목소리로 탈바꿈하죠. 소꿉친구가 연인이 되어 함께 손을 붙잡는 원곡의 뉘앙스가, 어느새 완연한 성인이 되어 책임감 가득한 사랑을 고하는 장면으로 컷체인지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강렬한 슈퍼루키의 등장을 선도한 노래로 <Antifreeze>를 기억하고 있어서일까요? 그녀의 어레인지에 놀랍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네요. 긴 사랑에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사람을 기다려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질 만큼, 그녀의 음색은 영원이라는 어리석은 약속도 단숨에 내뱉게 만드는 마법입니다. 3. 한계 [원곡 : 넬]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자, 넬의 전성기를 관통하는 앨범. 넬의 3집 [Healing Process]의 CD2 5번 트랙 한계가, 문자 그대로 한계를 뛰어넘었어요. 한때 ‘전 국민의 중2병 밴드’라고 불렸던 넬은 당장이라도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음울한 가사, 그러면서도 그 시궁창에서 벗어나고픈 간절함이 공존하는 곡을 많이 썼죠. <한계>도 그 계보를 잇는 숨은 곡 중 하나예요. 원곡은 스트링 세션의 전개와 김종완 특유의 절규가 만나 곡 후반부를 장식하면서,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했지만, 끝끝내 포기해버린 화자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어요.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화자의 마음은 자포자기와도 같지만, 그것이 자괴감이나 자기파괴의 늪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최후의 끈은 붙잡고자 하죠. 백예린은 스트링 세션의 비중을 줄이고, 기타를 메인으로 세워 그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가녀리면서도 위태한 심리를 잘 표현했어요. 그 어디에도 절규에 가까운 토로는 없으나, 위태함만큼은 원곡과 다르지 않죠. 그녀의 <한계> 덕분에 원곡 <한계>를 다시 찾거나, 처음 접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요. 넬은 이 노래를 한창 불만 많고 우울하던 시절에 썼다고 하는데요. 그때는 몰랐을 거예요. 그때의 한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한계들도, 그렇게 아무렇지 않아질 거예요. 4. 산책 [원곡 : 소히]
팬들의 요청이 가장 많았던 곡, <산책>이 앨범의 문을 닫는 마지막 트랙이자 타이틀곡으로 수록되었어요. 이 노래를 처음 만든 사람은 보사노바 뮤지션 소히의 2집 [Mingle]의 수록곡인데요. 보사노바 기타 리듬에 산뜻한 피아노 터치가 합을 이루면서, 지난날의 사랑이 기억을 스치는 풍경을 스케치하듯 그려내고 있죠. 비록 똑같은 가사지만, 백예린 버전은 헤어진 연인이 아니라, 오히려 당장이라도 만날 수 있는, 저 멀리 코너만 돌면 당장이라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연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녀가 갖고 있는 그리움의 목소리가 너무나 생생한 탓일까요? 보사노바 리듬이 사라진 자리에는 역시 피아노 라인만 남았지만, 다른 곡을 이끌었던 터치에 비해서 다소 무겁습니다. 전통적으로 보사노바 리듬은 산책하기에 적당하다는 평을 받는데요. 피아노 라인 밖에 남지 않았으나, 여전히 이 노래는 훌륭한 산책 BGM이에요. 세션이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리듬을 끌어당기고, 이윽고 사람의 마음까지도 끌어당기니까요. 오늘 저녁에도, 내일 저녁에도, 적잖은 금강대인이 정문으로 나가 후문으로 들어오는 산책 코스를 밟겠죠. 기다리는 이가 없어도, 혹은 그리워하는 사람이 없어도, 그 애틋함 만큼이나 곁에 있는 사람을 아껴줘야 할 것 같아요. 노래가 그렇게 노래하고 있거든요. [금강웹진] 박영서 sangmo2004@gg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