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이우성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를 읽고
12월 문화산책으로 이우성 시인의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를 읽고 느낀 단상을 적어보았다.
이우성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를 읽고
12월 문화산책으로 이우성 시인의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를 읽고 느낀 단상을 적어보았다.
얄궂게도, 나라는 녀석은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보다 과거에 안주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에게 편안한 것, 나에게 추억 있는 것들을 시일이 지난 후에도 반복하게 된다. 예컨대, 요즘은 해리포터를 다시 보고 있다. 지인들에게는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라는 어른 같은 말을 남겼지만, 그러나 지금의 해리포터는 그저 과거의 추억으로 도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일 뿐임을 나는 잘 안다.
잘 안다. 라는 단어는 무섭다. 특히, '나는 나를 잘 안다'라는 말처럼 무서운 것이 없는 것 같다. 익숙해져 버린 객관화, 그것이 자신을 오만하게, 또는 고립되게 만든다. 그렇지만 좀처럼 그 아늑한 요람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시인 이우성의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는 끊임없이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조우하고, 자신을 긍정하고, 또 자신을 부정하는 시어의 연속이다. 시인이 선호하는 몇몇 단어들, 이를테면, 사과, 나무, 꽃, 구름의 이야기가 몇 개의 작품에서 반복되며 그의 문학 세계를 구성한다.
시는 끊임없이 소년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소년처럼 사는 것은 다만 기억이 희망하는 것일 뿐임을.
'술래야 술래야/나무는 빗자루가 될 거야'(구순기의 총각은 스크류바를 빨고),
'네 친구가 네게 친구로 있니/잊을 게 많아 또 뜨겁니/우리의 먼 곳에서 너는 키가 더 크면 좋겠니'(집중하고 잊는다)
처럼, 어른이라는 굳건한 자각을 깨뜨릴 수 있을 것만 같던 소년의 기억은 다만 한 줄기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 바람으로 땀을 씻고 걸어야만 하는 숙명 안에 놓여져 있다.
그런데 한 줄 두 줄 주름이 늘어나는 생물학적인 변화, 그리고 백만 원 이백만 원 늘어가는 사회학적인 변화 따위로 어른임을 증명하기엔, '어른'이라는 껍데기 안의 놓인 ‘나’는 작고 나약한 번데기 같다.
꾸물대는 번데기, 움찔거리면서 자신이 이뤄낼 놀라운 변화를 상상하지 못하는 번데기가 여전히 우리의 안에서 꿈틀대고 있다. 다만, 이 모든 꿈틀거림은 옛 여자친구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사소한 해프닝 같은 것, ‘나’는 번데기로 남아 있을 수 없음을 자각한다.
'철봉에 매달린다/여자아이가 배를 가리키며 웃는다/너는 환할 때 혼자 놀이터에 오는 어른은 되지 마'(먼지)
와 같은 쓰라린 현실 인식이 일상의 나를 비웃듯이 찌른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책상에 앉는다.
'그래도 시인인데/애인이랑 통화하느라 못 쓴 시는 써야지/애인이랑 모텔가느라 못 쓴 시는 써야지'(이우성)
초라한 자아의 어설픈 모습을 감추고 지워, 우리는 어엿한 모습으로 사람들 붐비는 거리에 나서야만 한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나도'라고 먹었던 마음이었으나, 어느새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초라한 속내로 인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어진다.
그러나 놀라울 만큼 잘 안다. 반성하고 후회해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 자신의 미래가 과거 안에서 도사리고 있음을.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이 정도면 그럭저럭 다시'라는 마음을 먹는 수밖에 없다.
[금강웹진] 박영서 sangmo2004@gg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