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The Crown)>과 영국 왕실의 사랑 이야기
영국 왕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미디어의 주목을 받아왔다. 수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가 영국 왕실의 사생활을 그려내고 있으며,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비극적인 죽음은 세기의 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드라마 <더 크라운(The Crown)>은 이전까지 영국 왕실을 다룬 작품들과는 달리,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시점을 중심으로 한 인간에게 다가오는 다양한 종류의 사건들과 개인적 고뇌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문화산책 4월 호는 더 크라운에서 소개된 영국 왕족의 사랑 이야기들을 접한 뒤의 단상을 적어보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The Crown)>과 영국 왕실의 사랑 이야기
영국 왕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미디어의 주목을 받아왔다. 수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가 영국 왕실의 사생활을 그려내고 있으며,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비극적인 죽음은 세기의 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드라마 <더 크라운(The Crown)>은 이전까지 영국 왕실을 다룬 작품들과는 달리,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시점을 중심으로 한 인간에게 다가오는 다양한 종류의 사건들과 개인적 고뇌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문화산책 5월 호는 더 크라운에서 소개된 영국 왕족의 사랑 이야기들을 접한 뒤의 단상을 적어보았다.
#1.
1936년, 영국과 연합 왕국의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8세는 채 1년을 못 채우고 스스로 하야했다. 세자 시절부터 왕가의 골칫덩어리 취급을 받던 그였으나, 그가 1년 만에 하야하게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하야의 이유는 드라마에서 쓰기 딱 좋을, '신분을 초월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가 사랑했던 월리스 심프슨 부인은 사교계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녀처럼, 자유롭고 세련된 행동으로 일반인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같은 이유로 왕실의 미움을 한껏 받은 에드워드 8세는 자신을 그저 사교계에서 만나는 일반인처럼 대한 그녀에게 푹 빠져버렸다. 이른바, "나를 이렇게 대한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야."
그런 그는, "나는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 없이는 왕의 책무를 다 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라는, 왕실의 만류를 뿌리치고 행한 연설을 끝으로 대중적인 사랑과 함께 영국에서 사실상 추방당했다. 그렇다고 연금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후 둘이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재밌는 것은, 이미 보위에 오르기 전부터 에드워드 8세는 친 나치였다. 심프슨 부인은 한술 더 떠서, 영국 왕실의 정보원들이 그녀가 영국 주재 독일 대사와 잠자리를 한다는 사실을 기밀로조차 취급하지 않게 될 만큼, 오히려 에드워드 8세를 나치로 이끈 것이 그녀로 보일 정도로 친 나치적이었다. 스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참 후에 기밀문서가 풀리고 나서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대중들은 그와 그녀의 친 나치적 사고를 전혀 몰랐고, 그저 그들을 세기의 로맨스, 비운의 주인공으로만 알아서 엘리자베스 2세가 등극한 뒤에도 그들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에도 친 나치적 스탠스는 변하지 않아서, 부부는 히틀러를 만나고 오기도 하고, 심지어 영국 공습을 더 강하게 해야 영국 내 반전여론이 확산될 것이라는 의견을 독일 측에 전하기도 했다. 악명높은 유대인 수용소를 방문하고 나서도 그러한 기조는 나치가 패망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그녀를 위해 헌신짝처럼 내버린 왕위였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나치에 협력한 이유는, 내 생각엔 한 가지로 보인다. 독일의 힘을 빌려, 오직, 그녀에게, 왕비라는 칭호를 붙여주기 위해.
심프슨 부인과 에드워드 8세
#2.
한편,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인 필립 공의 외삼촌이자, 앞서 말한 에드워드 8세의 오래된 친구인 루이스 마운트배튼도 영국 역사에 굵직한 인물이다. 훗날, 아일랜드의 무장 독립 투쟁 단체인 IRA의 폭탄테러로 생을 마감한 그는 인도의 마지막 총독이었고, 인도 정치의 아버지 자와할랄 네루와도 절친이었다. 1947년, 영국 제국의 최후를 알린 인도의 독립이 비교적 평화롭게 이뤄진 배경엔 이 두 사람의 친분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한 여성을 사랑했다.
1922년, 루이 마운트배튼은 영국 외교관 남작의 딸인 에드위나 애쉴리와 결혼했다. 에드위나는 영국에서 손꼽히는 자산가였던 외할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상속받아, 하루아침에 세계에서 손꼽을만한 부자가 된 것이다. 결혼할 당시 에드위나의 수입은 남편 루이의 수입의 1만 배였다. 이 범상치 않은 여성 역시 그 재산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사고를 지녀서 당시 사교계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염문설을 뿌리고 다녔다. 루이스 역시 같은 사고를 지닌 사람이었고, 둘의 결혼은 open marriage, 즉 서로의 사생활과 성생활에 전혀 간섭하지 않는 약속하에 이뤄졌다. 이후 마운트배튼 백작 부인이라 불린 그녀는 동서와의 동성애 소문이 나기도 했고, 마운트배튼 백작의 절친 네루와도 염문설을 뿌렸다.
인도의 엘리트 중 엘리트였던 네루는 비슷한 계급이라면 으레 그렇듯, 일찍부터 영국에서 유학하며 당시만 해도 정치적으로 매우 세련된 영국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배워 온 사람이다. 냉전의 바람이 유럽을 뒤덮고 있을 시절임에도, 문맹률이 상당한 인도의 초대 총리로서 민주주의 시스템과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을 절충한 사민주의를 도입하고, 외교적으론 냉전에 휩쓸리지 않는 제 3세계를 외쳤으며, 지금도 인도의 핵심 문제인 카스트 제도를 반대하고 종교적 다원주의를 지지했다. 과연, 영국인들의 리즈 시절인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이며, 2차 대전의 전쟁 영웅이며, 엘리자베스 2세의 등극 이후에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끼친 마운트 백작의 라이벌, 아니, 내 눈엔 그 이상의 인물로 보인다.
네루와 마운트배튼 백작 부인의 로맨스는 영국 사교계에서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아마도, 내 생각에, 그녀의 수많은 로맨스 가운데 마운트배튼 백작에게 가장 큰 쓰라림으로 남은 것은, 아마도 네루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이 아니었을까 싶다. 1960년, 남편과 함께 시찰 중이던 말레이시아에서 그녀가 죽자, 네루는 인도의 구축함 2대를 보내서 그녀의 유해를 실은 영국 구축함을 호위하게 했다. 당연히 그 함선엔 마운트배튼 백작이 타고 있었다.
마운트배튼 백작–네루–에드위나 애쉴리
#3.
이상의 사람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에드워드 8세나, 심프슨 부인이나, 마운트배튼 백작이나, 그 부인이나, 네루나, 모두 자유로운 연애를 해왔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궁금했다. 왕의 위치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이 독일 대사와 사생활을 꾸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결혼의 꿈을 꾸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자신의 라이벌을 사랑하는 아내를 바라보며 품위 있는 식사를 함께하는 것이 가능할까.
또한, 그 부인들의 사랑도 궁금했다. 히틀러의 죽음과 함께 모든 야망이 사라진 뒤에도 심프슨 부인은 에드워드 8세만을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그 직전까지 아주 자유로운 사생활을 영위하던 사람이, 왕비가 될 가능성이 모두 사라졌음에도 오직 그만을 사랑했을까. 반대로 에드위나에겐, 그 수 많은 사랑 중에서 남편을 향한 사랑은 얼마큼 소중한 것이었을까. 네루가, 혹은 마운트배튼 백작이, 둘 중 하나의 선택지를 강요했다면 그녀는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이 모든 이야기는 당시 세계적으로 손에 꼽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만이 가능한 연애였을지도 모르겠다. 에드워드 8세는 왕위를 내려놓는 조건으로 죽을 때까지의 연금을 보장받았고, 투자 실패로 재산을 날렸지만 막대한 재산을 가진 부인 덕분에 마운트배튼 백작 역시 매우 부유한 삶을 살았다. 네루 역시도 인도대륙의 손꼽는 부자 가문 출신. 나는 넷플릭스 결제권도 손을 덜덜 떨며 결제해야 하지만, 이들에겐 그런 경제적 고민 탓에 사랑에 관한 선택지를 결정해야 하는 압박이 훨씬 덜하다. 심프슨 부인은 에드워드 8세가 아니었더라도, 마운트배튼 백작은 에드위나가 아니었더라도, 다른 사람을 만나 충분히 풍족한 삶을 누렸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사랑이 궁금하다. 그들의 사랑은 20대에 반짝 빛나는 로맨스가 아니라, 중년 이후 삶의 끝자락까지 맞닿아 나가는 것이었다. 위태위태한 로맨스를 줄기차게 이어나간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4.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 속에 소설 하나씩을 품고 산다. 누구에게나 마법 같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영화 같은 장면이 찾아온다. 그러나 강렬했던 순간은 잠시, 현실의 냉혹함과 고단함이 영원하리라 여겼던 사랑을 흐트러지게 한다. 사랑을 위해 왕위를 내버린 에드워드 8세, 평생의 라이벌과 삼각관계를 받아들여야만 했던 마운트배튼 백작, 그 곁에 선 에드위나 부인을 바라보는 네루. 격동하는 시대의 한복판에 섰던 인물들에게 사랑이란 유일한 해방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그 위태위태한 로맨스를 끝까지 이어갔던 것이었으리라
삶은 때때로 쓰라리고 또 아리지만, 그런 와중에도 마법 같은 순간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대로 괜찮은 삶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금강웹진] 박영서 sangmo2004@gg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