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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을 읽다. '금강웹진'

청춘유랑기

길 위에서

Hit : 1164  2018.04.01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다.”라고 서정주는 시 자화상에서 말한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 내가 삶에 대해 성찰하고 사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바로 길 위에서이다. 나는 수많은 길을 걸어왔고 각각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길 위에서




        윤형수(응용불교학, 14)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다.”라고 서정주는 시 자화상에서 말한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 내가 삶에 대해 성찰하고 사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바로 길 위에서이다. 나는 수많은 길을 걸어왔고 각각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다음은 나의 걷기의 역사이다.


2013년 2월, 열 아홉 살 : 제주도 문화탐방 국토대장정
10박 11일. 매일 20km 이상씩 행진, 7~8시간. 제주도 둘레 한 바퀴 (한라산 등정). YGK 단체.





수능이 끝나고 겨울방학은 시작됐는데,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집에서 빈둥빈둥하고 있었다. 우연히 스펙 관련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YGK 국토대장정 모집공고를 발견했다.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그저 낭비뿐이다!” 국토를 걷는 대장정에 나선다는 것이 가슴 설렜다. 나는 제주도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 때문에 육지 루트가 아닌 제주도 대장정을 선택했다.
발대식에 가서 보니 대부분 20대 중후반이 많았고 형, 누나들 아래로 나는 막내였다. 패기 있게 기수를 하겠다고 손을 들어서 행진 내내 맨 앞에서 걷는 행운을 누렸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부터 걷기 시작해서 8kg 정도의 배낭을 메고 낮 3시정도 까지 걸었다. 다리가 아픈 것은 물론이고 아침마다 정말 걷기 싫다는 생각을 하고 어쩔 수 없이 걸으면서 이제 진짜 그만 걷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래도 계속 버티고 걷다보니 어느새 휴식 타임이 와서 쉴 수 있게 됐고 끈덕지게 한 걸음 한 걸음 자기와의 싸움을 이겨내다보니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행진하는 길 양옆으로 제주도의 바다나 산이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길 위로는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바람 역시 시원하게 불었다. 지나가다 마을 어르신들을 마주하면 인사도 나누면서 제주도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한라산 정상에 가서 본 백록담과 구름은 정말 장관이었다. 나중에 나이 먹고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7월, 스물 두 살 : 서울 지하철 노선 따라 걷기
온종일 약 12시간. 약 27km 걷기. 7호선 부평구청역부터 고속터미널역까지.

서울 토박이로 자랐지만 정작 서울의 여러 장소를 가보지 않았었다. 서울을 좀 더 잘 알고 싶었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7호선을 걷기로 했다. 이미 고등학교 때, 7호선보다 짧은 길이의 9호선을 완주했었다. 나머지 노선도 하나씩 걸어볼 생각으로 7호선을 도전했다.
온종일 걸으면서 서울의 다양한 모습을 천천히 볼 수 있었다. 계속 상가나 건물들이 빼곡하게 배치된 모습을 보니 약간 답답하기도 했으나 이내 곧 공원도 나오고 내천도 나왔다. 시시각각 극적으로 풍경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서울의 역동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배고프면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지치면 벤치에서 쉴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철산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을 지나면서 안양천을 건널 때, 잠시 앉아서 발을 적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친구들과 여러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면서 걸었다. 추억이 많이 남았다.





2015년 1월, 스물두 살 : 전국 배낭여행
19일. 하루에 15km씩 걷기. 전국 도시를 위주로 한 바퀴 돌기.

고등학교 친구와 대화하다가 갑자기 전국여행을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둘 다 머름지기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전국 곳곳을 밟아봐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동의했다. 그래서 겨울방학이 시작했을 때, 부랴부랴 배낭을 싸고 돈을 모아 여행비용을 준비했다.
처음에 간 곳은 안양에 있는 여자 소년원이었다. 내가 스승같이 따르는 한 비구니 스님의 초대로 2박 3일 간의 불교반 겨울 수련회의 자원봉사자로서 참여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낮까지 비폭력서클 단체의 선생님 세 분과 스님과 함께 수련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소년원에서 만났던 아이들과 만났던 시간은 짧지만, 그들은 매우 강렬하게 나의 기억에 남았다. 수련회가 끝날 무렵, 나와 친구는 아이들에게 “여행하면서 너희 모두에게 편지를 보낼게”라고 약속하고 작별인사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바로 안양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 대전, 대구, 광주, 부산처럼 대도시는 물론이고 전주, 순천, 여수, 해남, 경주, 태백, 춘천 같은 중도시와 목포, 밀양, 공주, 담양, 안동, 강릉 같은 소도시도 갔었다. 기억에 남는 곳은 해남의 달마산 미황사이다. 달마산 아침에 정상에 다다랐을 때,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주변에는 바다와 산, 섬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바람은 세게 불었다. 자유를 느꼈었다. 담양에서는 자전거를 빌려 메타세콰이어길을 신나게 달렸던 기억이 난다. 밀양에서는 소년원 아이에게 추천을 받아던 얼음골을 가봤다. 나와 내 친구는 숙소에서 머물 때 마다 소년원에서 만났던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보내서 약속을 지켰다.
전국 여행을 하면서 나는 내가 스스로 사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보이지 않지만 모두 연결돼있다는 마음이 여행 내내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 번도 싸운 적 없던 친구와 여행 도중에 다투기도 했는데, 서로 성격의 차이를 극명하게 알게 되면서 더욱 친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7년 11월, 12월, 스물네 살 : 세월호 순례 3차 청년 순례
7박 8일. 하루에 12km씩 걷기. 부안군 변산면 공동체에서 정읍 내장사까지 같이 걷기, 마지막 날 진도 팽목항 같이 걷기.

세월호는 우리에게 가슴 아픈 상처이다. 그것은 단순히 인명 사고가 아니라 생명과 안전을 경시한 풍토 및 지도자와 구조자의 무책임과 무능함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비극을 반성하고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도법스님을 대표로 지리산 생명평화대학의 활동가들이 세월호 순례길을 만들었다. 그들은 아이들과 청년들, 그리고 중장년층과 함께 인천항부터 진도항까지 걸었다. (지금은 4차 64세 이상으로 구성되는 은빛순례단이 걷고 있다) 54일간 진행되는 세월호 순례 일정에 나는 뒤늦게 소식을 듣게 되어 5박 6일 동안 참여하기로 했다.
책상에 앉아 머리로 이것저것 상상할 수는 있지만 길 위에서 온몸으로 겪어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은 느낄 수 없다. 가만히 앉아서 공부에 집중하기  전에 공부를 왜 하고 싶은지,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그 이유를 잘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진정성은 마땅히 자신이 할 일을 알고 최선을 다해서 해나갈 때 같이 오는 것이다. 자기 등에 자신이 무엇을 짊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길을 걷는 낙타가 되지 않기 위해 짐들을 내려놓고 길 위로 훌훌 나섰다. 머리만 큰 가분수가 되기 싫어서 길 위로 나섰다.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간다.
뜻이 있는 곳에 동참하고자 순례에 갔다. 내 인생에 대해 고민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싶어 떠난 순례에서 생각이 차츰 넓고 둥글게 커져서 공동체, 마을, 한국 사회, 세계까지 퍼져나갔다. 나를 위한 순례는 곧, 모두를 위한 순례였다. 내가 어떤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꼐 같이 걷고, 먹고, 잔 순례 길에서의 만남은 정말 소중했다. 누군가의 말을 믿을 필요가 없다. 그저 삶으로 실천해내는 사람들과 감화되는 것이 더 마음에 와닿는 법이다. 나도 곁에 있기만 해도 좋은 영향을 주고 삶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길이 있어서 사람이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서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세월호 순례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을 만들어 나갔다. 그래서 순례자이면서 동시에 구도자였다. 길을 구하는 자는 의미와 뜻을 세워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나를 죽이고 남을 죽이는 삶에서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삶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처절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이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삶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혼자 살려고 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양심을 지키고 배려하고 상생하려는 용기는 쉽게 생기지 않는다. 다 같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자의 앞에는 쫙 깔린 포장도로가 아니라 울퉁불퉁 꼬불꼬불 비포장도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걸을수록 그 길이 잘 나게 되고, 더 걷기 쉽고 멀리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와 마을, 그리고 배려와 상생, 자연과 조화, 생명과 평화의 길로 살길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자연을 파괴하고 개발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거나 군부정권에 폭력적인 문화를 내면화시켜왔거나, 혹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부동산 투기를 해서 땅값을 천문학적으로 올려버린 기성세대들이 원망스럽다. 기성세대가 남긴 군사정권의 잔재와 적폐들을 방치하고 오히려 그것을 키운 이른바 지식인, 교수, 검사, 군인, 국가 공권력 기구들. 하지만 언제까지고 원망만 할 수는 없다. 이제는 어른들을 원망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스스로 소리를 내고,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함을 느꼈다. 앞으로는 평화와 생명, 더불어 살기, 자연, 환경, 독립, 자생. 이런 가치에 나도 동참하고 한 걸음씩 손잡고 나아가려고 한다.

붓다는 길 위에서 가르침을 폈다.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서 위 없이 높은 지혜를 깨달았지만, 몸을 일으켜 거리로 나갔다. 한없이 너그러운 자비로 길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에게 다가가 감화하였다. 비록 본인은 해탈을 통하여 윤회를 멈추고 형태 없이 사라질 수 있었지만, 기꺼이 세상으로 몸을 이끌고 나가 중생들의 슬픔과 상처, 그리고 고통을 껴안는 삶을 숨이 다할 때까지 산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삶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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