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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노동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Hit : 1566  2021.06.01

27일 오전 10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50대 일용직 근로자 A씨가 굴착기에서 떨어진 바위에 맞아 숨졌다. 파편적인 뉴스의 헤드라인에서 그가 살아내었을 무수한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통곡할 시간도 없이, 200kg에 달하는 무거운 바위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노동우리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박영서(19, 불교학)


27일 오전 10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50대 일용직 근로자 A씨가 굴착기에서 떨어진 바위에 맞아 숨졌다. 파편적인 뉴스의 헤드라인에서 그가 살아내었을 무수한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통곡할 시간도 없이, 200kg에 달하는 무거운 바위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나는 “우리나라의 자원은 인적 자원뿐”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섬뜩해진다. 똑똑하고, 창의적이며, 유능한 인적 자원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저렴한 인건비, 혹은 무수히 많은 야근과 특근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인적 자원을 말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며 분신한 지 41년이 지났다. 지난한 시간이 흐른 덕분에 우리에게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다양한 사회적 안전장치가 설치되었다. 투쟁과 정치를 통해 얻어낸 값진 성과이며, 뒤로 물릴 수도, 물려서도 안 되는 여러 세대가 남긴 유산이다.


그러나 여전히, 생명을 담보로 노동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23일, 부산 신항에서는 퇴근하던 30대 근로자가 대형 지게차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지난 4월, 평택항에서는 원청의 지시로 컨테이너 업무를 돕던 하청업체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018년, 한 노동자가 태안화력발전소를 홀로 점검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2017년, 제주의 생수공장에서는 현장실습을 하던 고등학생이 목숨을 잃었고, 2016년 5월,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김 모 군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데, 일로 인해 더이상 먹고 살지 못하게 되는 이러한 일들이. 어째서 그들은 ‘홀로’ 작업해야 했으며, ‘원청 지시’를 받아야 했으며, ‘굴착기’ 밑에 있어야 했으며, ‘현장실습’을 해야만 했던가. 그저, 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그래야만 했던 말할 수 없는 맥락이 숨어 있다.

부당한 지시인 것을 알면서도 따라야만 하고, 안전장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나서야만 하며, 훨씬 더 많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나이임에도 그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상황이 우리 주변의 많은 일터에서 여전히 잔존한다.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책임자를 찾는 일이다. 왜 부당한 지시를 단호히 거부하지 못했냐며, 왜 위험한 직장을 사직하지 않았냐며 따지는 일은 옳지 않다. 우리 사회의 규모와 경제적 수준을 고려하면, 생명을 담보로 일해야 하는 기업 문화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모든 인간은 그러한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 존재한다.


왜 부당한 지시를 내렸냐, 왜 제대로 보호해 주지 않았냐, 라는 비판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선인과도 같이 악인은 하늘이 만들어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러한 상황에 놓였을 때 돌출할 뿐이다. 우리가 보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왜 그러한 지시를 내려야만 했으며, 왜 그러한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는지에 있으며, 결국 보이지 않게 완성된 시스템을 추적해야만 한다.


그러나 또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뚜렷한, 육체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 그리고 그들이 누리게 되는 삶의 질은 여전히 가혹하다. 마땅히 한 명의 사회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다 하는 공장 노동자일지라도, 그를 향한 시선은 존중과 추앙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목숨인데,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것이 어째서 사회적인 존경을 받는 것과 반비례하는 것인가.


치킨 몇 마리를 훔쳐 먹는 배달 기사와 천문학적인 금액의 탈세를 저지른 기업인의 죄가 같은 무게를 지녔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부정적인 인식은 전자가 더 강하다. 아마도 전자는 나의 피부에 와닿기 때문에, 그리고 거리낌 없이 비판을 가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론, 후자는 우리의 일자리를 책임지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명분이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을 담보로 노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자리한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잘 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중대한 뉴스 거리로 다뤄진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인식이 나아지고 있다는 결정적 방증이다.


다만, 그러한 변화가 우리의 개인적 차원까지도 확장되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길을 걷는 친구들이 등장할 것이다. 혹자는 공장 노동자가 되고, 혹자는 치킨집 사장님이 되며, 혹자는 회계사가 되고, 혹자는 고위 공무원이 될 것이다. 그 모든 이들은 ‘노동’으로 자신의 삶을 채우고 있다는 것으로 마땅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그리하여, 어떤 친구의 근황을 들었을 때, 그 친구가 비록 내가 선호하지 않은 직업을 가졌을지라도, 그 친구의 도전과 하루를 응원하고 존중하는 문화. 월급 명세서에 찍히는 금액이나 그가 입은 기름때 묻은 작업복으로 그의 인생을 평가하지 않는 문화. 그러한 문화가 우리에게 당연한 보편이 되어 뿌리를 내리는 사회가 찾아오기를 바란다.


생명을 담보로 걸지 않고도 마음껏 노동할 수 있는 나날이 찾아올 때, 비로소 노동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금강웹진] 박영서 sangmo2004@g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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