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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Hit : 1379  2016.10.01

실수와 실패의 대가인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은 “우리의 가장 큰 실수는 포기하는 것이다. 성공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시 한 번 더 도전해 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수는 보편적이다. 게다가 실수는 미래를 앞당기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는 필자가 거듭 강조하는 바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실수를 범하는 것일 수 있다. 잠재적 폭발적 가능성을 왜 개인이 만든 틀 안에 가두려 하는가? 실수를 가장한 반인륜적인 행위에 대한 비판이 아닌 이상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한 사람이, 더 나아가서 인류 전체가 한 발 진보하는 데에 있어 장애로 작용할 뿐이다. 따라서 실수 자체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실수가 주는 경고의 전언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다.


 실수
                                             

       김성연(사회과학부, 16)




우리는 인터넷 서핑 혹은 메신저를 하다 보면 ‘sla’, ‘사쥬ㅓ’, ‘감사햐요’, ‘오나전’, ‘어ㅈ9’ 등과 같은 많은 오타를 입력하거나 발견한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실수의 전형적인 예시이다. 실수는 정말 흔하디 흔한 것으로, 우리는 매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알게 모르게 반복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 세상은 실수와 우연의 연속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는 것 같다.


만약 여러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바와 같이 우주가 전적으로 조물주의 완벽한 의도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우주 안에 사는 인간들은 항상 다양한 실수 및 그로 인한 우연적인 사건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상상해 보자. 만일 인류 역사가 단 하나의 실수도 없이 흘러왔다면 우리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빠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간의 지적 한계에 봉착해 여러 위험한 고비를 마주해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은 꼭 부정적인 상황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스펜서의 전자레인지 발명, 알렉산더 플레밍의 푸른곰팡이 발견 등과 같은 사건들은 모두 그들의 실수를 비롯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부차적으로 발생한 위대한 일이다. 스펜서가 초콜릿이 녹기 전에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일찍이 꺼내 먹었더라면, 그리고 플레밍이 자신의 실험실의 포도상구균 배양접시 뚜껑을 닫은 채 휴가를 떠나서 배양접시에 푸른곰팡이가 떨어지지 못했더라면, 인류의 앞길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실수는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도 한다. 그 규모가 크든지 작든지 실수 뒤에는 항상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서 너무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그 뒤에 열린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의에 어긋나는 실수에 대해서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신약 성경 야고보서 3장 2절에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말실수와 관련된 유훈적인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필자는 개인적으로 말실수는 범하지 않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이성과 감정을 동시에 가진 인간이 같은 인간을 상대로 말로 정신적인 피해를 주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그른 일이기 때문이다. 한 번의 말실수로 언론에게 뭇매를 맞고 여론의 힘에 의해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람들이 매체를 통해 여태껏 많이 노출되었다. 이때의 ‘실수’는 앞에서 언급한 ‘실수’와는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실수’는 ‘고의로 일으키지 않은 결과 혹은 행위’만을 의미하나, 지금 이야기한 ‘실수’는 ‘의도성이 다분하며 임의의 형태의 부정적인 파급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는 행위’까지 포함한다. 그렇다면 말실수뿐 아니라 후자에 포함되는 모든 실수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실수와 실패의 대가인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은 “우리의 가장 큰 실수는 포기하는 것이다. 성공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시 한 번 더 도전해 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수는 보편적이다. 게다가 실수는 미래를 앞당기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는 필자가 거듭 강조하는 바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실수를 범하는 것일 수 있다. 잠재적 폭발적 가능성을 왜 개인이 만든 틀 안에 가두려 하는가? 실수를 가장한 반인륜적인 행위에 대한 비판이 아닌 이상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한 사람이, 더 나아가서 인류 전체가 한 발 진보하는 데에 있어 장애로 작용할 뿐이다. 따라서 실수 자체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실수가 주는 경고의 전언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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